장작 개인전

[두려움에 대하여] 저에게서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다가올 제 기분과 감정을 짐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전혀 대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어떤 날씨의 기분이던 그저 맨몸으로 받아내었습니다. 그렇게 대처하지 못하고 겪어낸 감정들의 온전한 형태를 담아냈습니다.

직면 - 두려움이란 것은 그 자체로, 심지어 적어내린 단어 하나만으로도, 다시 말하자면 그 단면만을 떠올리기만 하더라도 나를 떨게 만들었다. 많은 것이 두려웠다. 일반적이지 않음을 선택한 뒤의 타인의 눈총이 두려웠다. 그 시선들을 견디며 묵묵히 걸어나가야 하는 외로움이 두려웠다.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됐을 때의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따스한 척 건네는 상투적인 위로가 두려웠다. 그 손짓에 몸이 흠칫하면서도 웃으며 감사하다는 대답을 뱉을 역겨운 자신이 두려웠다. 그 뒤의 자괴감이 두려웠다. 무너진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세상이 두려웠다. 바보 같은 이유로 뒤처질 한심스러운 자신이 두려웠다. 이제 그런 나에게 따뜻한 흉내도 내주지 않을 이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이제는 상투적으로나마 받았던 응원들마저 받게 될 수 없게 된다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 두려웠다. 일어나지도 않을 갖가지 일들에 휩싸여 나는 떨었다. 나는.. 이 두려움을 직면할 수 없었다.

이면 - 두려움을 외면하는 것의 그 반대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외면이 존재했다. 나는 나를 돌이켜보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살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픈 그대로 방치해두었다. 나는.. 나를 슬프게 놔두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나를 미워할 수도 원망할 수 없었다. 아픔이 있으니, 괴로움이 있으니, 서글픔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아픔과 괴로움들에 이미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자신까지 돌아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슬플 뿐이었다. 아프지 않았으면, 힘들지 않았으면, 고뇌하지 않았으면, 슬프지 않았으면 했건만 바람대로 되지 않아.. 스스로가 슬픈 것에 슬펐다. 행복하길 바랐건만, 기쁘게 살았으면 했건만, 다채롭지는 못해도 그저 무탈하기라도 원했건만.. 나는 슬프기에 바빴다. 그런 내가 슬펐다. 그렇게 슬프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가장 슬펐다. 슬픈 나는, 그렇게 슬프도록 놔두었던 나를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슬퍼서 슬픈 나는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면 - 무수한 슬픔에 잠길 때, 생각보다 나의 표정은 덤덤했다. 무언가 특별히 눈살이 지푸려지지도, 그렇다고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속의 나는 무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슬픔에 대한 원망이 나에게 때로는 분노를 주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갈 곳이 없다. 누구를 탓할 수도, 타인에게 책망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것들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나를 더욱 끓게 만들었다. 어딘가로 배출되지 못하는 감정들은 나를 썩게 만들었다. 나를 곪게 하고, 나를 무너트리고,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다시 원망으로, 원망은 다시 슬픔으로, 그 슬픔은 다시 분노로.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별거 아닌 일일뿐이라며 나를 마주한 사람에게 안도감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표정으로는 그런 말을 건넬 수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상대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부끼다 - 거스를 수 없는 감정에, 그 거대한 폭풍 속에 놓여있어야만 했다. 어찌할 수도 없이 모든 걸 휩쓸어가는 저 바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나의 성취도 모두 쓸어가 나를 돌이켜볼 수 없게 만드는구나. 아, 나의 모든 마음도 흩뜨려 처음부터 다시 쌓게 만드는구나. 아, 나의 눈물도 모두 앗아가 나를 울게끔도 못하게 하는구나. 아.. 나는 언제고 불안해야 하는구나. 아.. 나는 단단할 수도 없는 사람이구나. 아.. 나는 눈물자국조차 남길 수도 없구나. 나는 언제라도, 아무리 약한 바람이라도 휘날려야 하는구나. 나는.. 나약하구나


[나아감에 대하여]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동기와 원인은 다르지만 결국은 몸을 덜덜 떠는 행색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것을 디뎌내고 가슴속에 간직하게 된 다짐은 각자의 고유한 형태를 띱니다. 그러한 저마다의 새로운 국면을 나타내 보았습니다.

形形色色 (형형색색) -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과 함께, 이내 확신에 가득 찬 듯한 눈빛을 띠었다. 짙은 흑연과도 같았던 그의 흑백은 형형색색을 띠었다. 웃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슬퍼 보이지도 않았다. 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태 가져오던 것과는 다른, 확연히 다르고도 확고한 무언가를 지니게 됐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언젠간, 그는 여전하듯 고꾸라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예전처럼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다시 일어나, 다시금 발을 내딛을 것이다. 그는 지금 그러겠다는 말을 건네는 듯한 얼굴을 띄고, 언제 눈물을 머금었냐는 듯한 눈을 가지고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더없이 다채로웠다.

灼 (불사를 작) - 너무나도 명료해졌다. 내가 무엇을 할지, 그 무언가를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앞으로 어떤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너무나도 총명이 떠올랐다. 나아가자. 여태 나를 가로막았던 것들마저 모두 품고 앞으로 나아가자. 나를 슬프게 만든 것들, 그럼에도 끌어안고 있던 것들은 이제 놓아주고 가벼운 몸으로 나아가자. 슬프기에 바쁘느라 쓰지 못한 나의 여력들로 나를 불사 지르자. 더없이 밝고, 끝없이 오래갈 이 불길을 위해 나의 모든 것들을 불태우자. 무언가 번듯한 결과가 없어도 괜찮다. 무언가 자랑할 만한 거리들이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 내가 정한 목표를 위해 장렬히 나를 불사르는 것만으로 한없이 아름다울 것이다. 

飛 (날 비) - 자, 날아오르자. 가벼워진 내 몸을 고스란히 내던져 나의 것을 일궈내자. 나를 휘청이게 만드는 바람을 더욱 느끼며 나를 더욱 떠올리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나에게 고난을 주었던 것들,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한 앙갚음을 위해서도 아니다. 온전히, 온전한 나를 위해 나는 날아오르는 것이다. 마음껏 발돋움하고 마음껏 도약해 힘차게 떠오르자. 이제 다시는 후회라는 것은 없게끔 나를 비상시키자. 그렇게 날아올라 지금껏 꿔온 꿈들을 하나씩 이뤄보자. 대지에 붙은 나의 발을 기꺼이 떼어내자.

喜 (기쁠 희) - 기쁘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걱정과 근심들을 벗어던지고 말끔해진 마음을 맞이한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남아있지 않다면 거짓말이겠다. 내가 여태 안고 있던 것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었고, 난 여태 그런 것들에 불안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을 하나둘씩 털어내다 보니 나는 이내 떠안고 있던 짐이 없어지게 되었다. 홀가분하다. 나를 가득 감싸고 있던 짐들을 벗어내고 가벼워진 몸으로 나를 위해준 모두를 한 번씩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고맙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의 좋은 모습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가 됐다고 생각하니 나는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웃음이 사그라들어도 괜찮다. 드디어 다시 웃었으니, 웃는 법을 다시금 기억했으니 언제라도 나는 웃을 수 있다. 잠깐 넘어진 것 뿐, 무너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리라. 잠깐 구름이 꼈을 뿐, 언제고 먹구름이 가득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으리라.



[장작에 대하여] 불꽃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 태울만한 것이 없다면 불꽃은 곧 사그라들고 맙니다. 우리는 불꽃의 원동력, 계속 타오를 수 있게끔 해주는 장작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마다 다르겠습니다. 하지만 명확히 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나를 두근거리게 만드는, 내가 두려움을 디뎌낼 수 있게 만들어 준, 나를 멈추지 않고 나아가게끔 만드는 나를 불사르게 해주는 장작이.

불완전 속에 영그는 완전함 - 우리는 움직입니다. 각자마다 다르겠습니다. 목표도, 가치관도, 성공을 위한 수단도 모두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자신이 정해놓은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던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 무언가를 위해 각자의 리듬과 각자의 방법대로 움직일 것이고, 그 노력들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다운 한순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지속되는 아름다움은, 우리의 땀이 맺힌 노력들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작고 미약한 하나가 결국 커다랗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않고 이어가면 되겠습니다.

불완전 속에 영그는 완전함

둘러보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안함을 항상 품고 살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께서도, 저의 동년배는 어쩌면 당연히,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모두 각자의 모양과 각자의 방식으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형태의 두려움이 결국은 스스로의 존재에 관한 두려움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존재의 영속, 존재의 뚜렷함, 존재의 우유부단함..

인간은 생각이라는 과실을 갖게 된 이후부터는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이라는 굴레와 더불어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인간의 반대면은 곧 두려움이라고 생각했고, 갈래는 달랐지만 모두 한 점으로 모인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 한 점을 그려냈고, 그것과 마주하는 시간을 제공하려 합니다.

하지만, 각자가 처음 가졌던 두려움이 다르듯 나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의 그 시작도 전부 달랐습니다. 굴레에서 벗어난 듯이 환한 마음, 아니면 그 굴레를 포용하는 듯한 다짐, 혹은 그 굴레의 수라에서 한 걸음씩 내딛는 용기. 아직 그러한 시점에 어떻게 다다르는 지 알지 못해 헤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전시를 기획하였습니다.

기획에 서술하였듯 관객의 불안을 어루만지려고 하지만, 정작 제 자신도 그러한 감정들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겪었던 감정들을 그림에 담아, 그것을 품은 저의 그림이 다시 관객에게 저의 감정들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하려 합니다. 직접 겪었기에 더욱 적나라한 두려움에 대한 마주함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챕터 1. 두려움에 대하여] 입니다.

[챕터 2. 나아감에 대하여]는 스스로가 더욱 단단해지거나, 혹은 두려움에 대한 처세술을 얻어내어 그러한 감정들을 오히려 양분으로 삼아 나아가는 시점을 서술합니다. 그러한 시점에서의 깨달음의 순간, 나아감에 대한 다짐, 명쾌함의 웃음으로 그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가게 되는 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챕터 3. 장작에 대하여]는 [챕터2]와 밀접합니다. 그러한 나아감을 지속하고, 삶을 영속하기 위해서의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스로는 자신과 자신의 무언가를 불살라 존재를 밝힘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한 불사름과 온기가 지속되기 위한 그 무언가, 장작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작업물들은 모두 디지털 작업입니다. 하지만 작업물들은 현물로 제작했을 때를 항상 염두 하며 작업됩니다. 그에 맞춘 관객이 압도감을 느낄 만큼의 구상한 크기로 연출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작업물들은 80x100(cm)의 크기로 캔버스에 인쇄될 것이며, 일부 작업물은 40x50(cm)의 크기의 캔버스에 인쇄될 예정입니다. 예외로 한가지 작업물은 pvc판에 인쇄되어 조금의 여유를 두고 겹쳐 있는 형태로 설치될 예정입니다.

그러한 작품의 올바른 감상, 작업물과 관객의 마주하는 시간은 다른 매개체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온전히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해, 그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모두 배제할 계획이기 때문에 오브제나 음향 및 소재들은 사용 및 설치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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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완전 속에 영그는 완전함
• 8/15 ~ 8/21
• 10:00-18:00
• 아이테르 범일전시관,(48737) 21, Beomil-ro 65beon-gil, Dong-gu, Busan
• https://aith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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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최영웅
• 2021.10 단체전 initializing 참여
• 2022.02 에이징ccc x 장작 콜라보레이션
• 2022.07 삼성전자 광고영상 일러스트레이터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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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ist/Director
Gong Myeongseong
갤러리 아이테르 [ AITHER ] 부산전시관
(48737) 21, Beomil-ro 65beon-gil, Dong-gu, Busan
https://aither.kr
sck021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