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여름밤의 춤

• 달과 여름밤의 춤
• 2022. 07. 19 ~ 2022. 07. 26. 10:00 - 18:00
• 아이테르 부산 전시관, 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 허채은

라이브 페인팅 : 2022년 7월 20일 수요일 오후 8시 서면 ZARA사거리
아티스트 토크 : 2022년 7월 24일 일요일 오후 7시 아이테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무도 기리지 않는
아무도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존재들

과거로부터의 수천년간 역사 속에, 신화와 전설 속에 언제나 살아왔던 존재들
현재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 속에, 생의 흐름에 온몸으로 부딪혀 가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과거와 현재의 그들이 모두 스러지고 난 후에도
미래를 살아갈 그들의 후손들

이들을 이 세상에서는 갖가지 이름으로 칭하고 분류한다.
여성. 이방인. 약자. 소수자 등

나의 작품, 나의 전시는 이들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것들이 이들에게는 당연시되었다.
인격과 존엄성에 대한 부정.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
자유의 박탈. 고통. 속박. 이 세상이 정해놓고 공고히 매듭지은 일정한 삶의 궤도를 벗어나는 순간 그에 대한 댓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손가락질. 죄인과도 같은 낙인. 폭력. 고난과 지탄. 외로움. 고독. 결핍.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매서운 풍파와도 같이 육체와 영혼을 모조리 파괴하려는 듯 사정없이 달려들 때 안쪽으로 단단히 여민 인내의 시간
.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들의 흔적을 지우고 인격을 앗아 가며 서사를 왜곡하였던 의지들은
결국 모이고 쌓여서 마치 영겁의 세월과 같이 무겁고 차가운 공허함, 공백, 무관심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그토록 차갑고 완고한 무관심조차 가릴 수 없는 찬란한 그들의 서사, 생경한 고통과 함께 끝없이 이어진 어둠의 타래 속에서도 내뿜는 찬란한 빛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그런 걸 불편하게 왜 언급해. 하나하나 신경 쓰고 어떻게 살아. 귀찮잖아. 그냥 무시해. 굳이 왜 생각하는 거야. 떠올리지 마. 잊어버려.

그 존재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려 했던 때도 있었다..
구슬프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하고, 폐혈관으로부터 긁어올려 토해낸 듯 찢어지게 날카롭기도 하게 들렸던, 체액과 온기와 영혼을 가지고 살아있던 것, 살아있는 것들이 내는 그 목소리들이 듣기에 고통스러워 애써 무시하려고도 하지 않았던가. 도망치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눈을 감아도, 귀를 꼭 닫아도 보이고 들리는 것이었으므로, 못 본체 뒤돌아서도 반드시 다시 고개를 돌리게 되었으므로.
그것들은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마치 불가항력이라도 작용한 듯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이 왔다.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도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에서 앞으로 어떠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결심을 하고 난 후에는 그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여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자칫 그 존재조차 모를 뻔하였던 수많은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어 우매한 나의 경직된 세계관을 넓혀줄 수 있었으므로. 대학생 시절부터 졸업한 지금까지 나의 작품을 이루는 세계에 풍부한 형과 색을 주었으므로.

나의 첫 개인전 < 달과 여름밤의 춤 > 은 이러한 나의 세계의 축제와도 같다.
7월의 8일간에 걸친 이 축제동안은
달의 반쪽과도 같은 어둠 속에 머무는 듯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신화와 전설 속,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수많은 존재들이 마치 백귀야행의 혼령들이 땅으로 내려오듯 세상의 빛을 향해 모습을 내보이고 그들만의 찬란한 빛을 내뿜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아무도 축복하지 않는 이들을 축복하며
모두가 괴물이나 죄악의 근원이라 불렸던 이들에게는 찬사를 보내는 기이하고 몽환적이며 불온한 축제.

이러한 축제에 당신을 초대하려 한다.
부디 꿈과 같으며 이질적이고 그로테스크하며 따뜻하고 슬프면서 기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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