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ITUDE

아이테르 청년작가기획전

세상을 대하는 태도 : ATTITUDE

박지원, 백주아, 추혜민, 황정원
2022.12.31.~2023.01.19.
10:00~18:00
AITHER
(48737) 21, Beomil-ro 65beon-gil, Dong-gu, Busan
https://aither.kr

<세상을 대하는 태도 ATTITUDE> 전시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4명의 작가가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지고 예술을 대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기획되었다. 

분석 심리학자인 융(Carl Gustav Jung)은 attitude란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반응하는 정신의 준비태세'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애티튜드는 정신의 준비상태를 의미하며, 어떠한 행동을 하기 위한 준비상태이고, 준비상태 중에서도 몸보다는 마음이 먼저라는 말을 뜻한다. 

1900년대 중반 애티튜드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 정립된 이후 심리학자인 올포트 등에 의해 '에티튜드는 어떤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려는 학습된 성향'이라는 개념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애티튜드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애티튜드는 하루 아침에 단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수년,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삶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대할 때 그 사람의 애티튜드를 유심히 본다. 어쩌면 애티튜드는 본질을 바라보는 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각기 다른 네 명의 작가들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예술을 대하는지에 대해 보여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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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TUDE 전시 연계프로그램 : 아이테르 예술인의 밤

23.01.13 20:30 ~ 22:30

1부 – 20:30 ~ 21:00 ATTITUDE 전시 및 작가 소개
2부 – 21:00 ~ 22:30 아티스트 토크 및 네트워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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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사랑은 욕망에서 시작한다.
'사랑' 하면 핑크빛, 파라다이스, 행복 등 긍정적인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실상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능, 질투, 욕망, 집착 등이 즐비해있다. 인간이 진화하듯 사랑도 함께 진화해온 이 상황에서 사랑이 사랑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복합적으로 진화한 사랑을 부정하기보단 진화한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고, 사랑을 관철하는 태도에서 작품이 시작된다. 

Love & Desire
사랑과 욕망, 신앙과 돈, 역사와 일상, 보물과 요물. 이질적이고 상반된 것을 동시에 사랑하고 욕망하는 모습이 나의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은 연인을 향할 수도 나를 향할 수도 때론 역사를 향할 수도 있다. 이처럼 시시각각 바뀌는 세속적 욕망과 이상적 바람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 '작가의 다양한 욕망'을 대하는 방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느끼길 비란다. 

세상에 없던 족자 시리즈
이번 전시는 선조들이 회화 작품을 향유할 때 사용하던 족자와 작가의 무의식에 떠다니는 낙서를 결합하여 제작한 <족자 시리즈>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고루한 것이라 인식되던 옛것과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낙서를 결합하여 세상에 없던 '낯선 작품'을 탄생시켰다.

백주아

<세상을 대하는 태도 ATTITUDE展 백주아 ARTIST STATEMENT>

사회적 이슈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물질화하는 것이 거시적인 작업의 방향이다.
인간과 인간 사회의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으로 현실과 예술의 유기적 상호 관계를 가시화하고 작품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주로 인류애를 기반으로 주제를 선정하며 궁극적으로 평등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구체적으로 인종, 젠더, 계급을 아우르는 사회문제와 데이트 폭력 이슈, 인간의 개성과 다양성 존중 등의 키워드를 다룬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정의롭지 못한 사건에 주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그 배경은 내가 살아온 삶 또한 기득권이 아닌 입장(한 부모 가정, 청년, 여성, 노동자 등)에 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 느꼈던 차별적 시선과 불합리한 사회시스템에 대한 변혁의 욕구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일환으로 나와 비슷한 입장의 많은 이들의 처우개선을 실현 시키고자 여의도 현실 정치 현장에 뛰어들었으며 국회의원 정책비서, 대통령 캠프 청년정책 자문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한 신념을 실천에 옮긴 경험이 있다.

예술도 방식의 차이일 뿐 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현실 세계와 예술의 괴리를 허용하는 것을 지양하며 동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정치적 도구로서 작동되는 예술을 지향한다. 

나에게 있어 캔버스는 시각적 표현 도구의 개념을 넘어서 개인이자 사회의 한 구성원인 작가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기능을 가진 또 다른 자아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불의를 정의로 전환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비극적일 수 있는 사회의 이면을 예술로 끌어들여 밝게 표현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역설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세상을 작품으로 만나 작금의 사회를 대하는 태도(attitude)와 사고방식에 대한 외연을 확장할 수 있길 바라며 세상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지점을 재발견해 주목시키고 사유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시한다.

특히 부산시 동구 범일동 소재의 전시관 근방 지역성을 반영한 지역 사회문제에 대해 재고하고자 한다.

부산시 동구는 CBD(Central Business Dsrticr)라 일컫는 부산의 전통적 오피스 도심권역으로 기업의 본사, 금융 및 보험업이 발달되고 밀집되어 있으며 역사와 문화가 깃든 부산항과 부산역 등이 있는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써 중심지 역할을 하는 순기능이 있다. 
반면 거리 풍경만 보아도 도시 명암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고지대와 저지대 간의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지역 중 하나이다.

또한 부산역을 포함해 부산진역에 위치한 중앙 부두, 제3,4,5 부두를 아우르는 북항 재개발 사업과 범일동 일대 전반에 걸친 부동산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극단적인 빈부격차가 발생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빈부격차 즉 세대와 계층 간의 경제 양극화 현상은 다양한 현대사회 어젠다 중에 특히 주목받고 있는 문제이다.

이번 작업으로 날이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와 불균형, 불평등의 문제를 짚어보고 빈부격차와 차별을 넘은 공존과 공생의 길에 대한 이상향을 바라보고자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심화는 궁극적으로 사회갈등을 야기하고 사회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빈부격차는 오롯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경제적 자산과 소득분배와 재분배의 과정이 올바르지 않아 발생되는 물질의 불평등 현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양은 일정한데 누군가의 독과점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자는 상대적으로 더 작게 가지며 살아가는 구조이다.

이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무질서의 정도를 개념화한 물리학 열역학 용어인 엔트로피 법칙이다.

엔트로피 법칙은 시간과 공간의 수평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정신적인 초월이라는 수직적 세계까지 침범하진 못한다.
불평등, 빈익빈 부익부, 높은 빌딩과 빈민가의 양극화 이미지 또한 수평, 수직으로 시각화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에 수직과 수평을 키워드로 사회현상과 엔트로피의 불가분한 관계를 풀어보고자 한다. 
비물질인 정신적 차원은 경계와 제한이 없어 엔트로피 법칙에 지배되는 차원이 아니다. 전체가 정신이라면 전체에 속한 부분의 세계가 물질이다. 물질의 틀을 뛰어넘은 정신적 영역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기 이전에 엔트로피 법칙을 철저히 이해해 보면 물질세계의 법칙이 정신세계만은 지배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세계는 공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예술 혼 또한 정신적인 활동이지 않은가. 예술품보다 작가의 높은 정신성과 아이덴티티가 더 중요한 이유를 여기에서 설명할 수 있다. 마이애미 아트 바젤 전시장에 설치된 이탈리아 미술가 마우리지오 카텔란의 작품‘코미디언’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같은 맥락이다.
엔트로피 이론을 예술로 적용하자면 작가의 철학(비가시적 상태)에서 작품(가시적 상태)으로 또 전시의 끝(소멸 상태)으로 가는 프로세스를 통해 일시적으로 엔트로피의 과정을 역행시켜 높낮이 상태의 전환을 꾀할 수 있겠다. 
자연은 엔트로피가 증가하지 않는 방향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따뜻한 물속 얼음이 스스로 물이 될 순 있어도 외부 에너지가 유입되지 않는 한 따뜻한 물이 얼음으로 변화할 수 없듯이 인간의 삶과 사회현상에서 엔트로피의 증가를 막을 수 없고 예술에 대한 신념 또한 자연법칙에 부합하지 않지만 예술 활동을 통해 메시지를 던져줄 수는 있다.
예술 활동은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인간의 활동인 셈이다.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인식하며 수준 높은 의식화를 통해 작품을 선보여 사회현상과는 역방향으로 흘러 다름의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이번 전시에서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추혜민

예술에 대하여 본연의 주체에 대한 태도로는 일상 내지 비일상이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시작한다.

사각 캔버스에 보여지는 시각적 형태에서 보이지 않는 감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경계를무너뜨리고 모호한, 불확실한 찰나의 순간을 잡아 나타내는 작업들로 진행하였다.

작업 시작점에 있어 접근법으로는 일상에서의 감정, 상태, 현재 지금 이 순간에 받아들여지는 어느 무언가를 실루엣 내지 색감적으로 단순화시켜 접근하고 있다.

접근하는 과정 속에서 의도하지 않은 흔적들과 누락되고 결여되는 부분, 표면의 보여지는 것과의 상관관계에서 많은 조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을 마주하는 이들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한정적인 틀의 시각적 형태를 넘어서 불확실한경계의 속에서 그 외의 것을 찾아 본연의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황정원

단순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섰다.
욕구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상품을 고르려 하였지만 난 선택을 유보할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 진열된 상품들이 나에게 끝없이 자기를 사달라고 주장하였다.
순간적으로 그들의 소리에 둘러싸인 난 무수한 선택지에서 선택의 자유란 구조 안에 멈춰버렸다.
나는 나의 의지보다는 어떤 이끌림에 의하여 살아간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꼈다.

무릇 개인은 그랬다.
개인은 생존의 대가로 사회의 유지를 위한 역할을 맡았다.
사회는 많은 방법론을 통해 유지에 있어 효율적으로 개인을 사용하였다.
법, 윤리, 교육, 선전 등이 대표적 예시이다.
단단하고 견고한 사회일수록 이것들을 잘 조합하여 구성원을 통제한다.
우리는 자유의지적 선택을 토대로 성장한다 느끼지만 사실 개인은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주어진 선택지 중 선택을 하는 것이 과연 자유일까?
개인은 과연 자유인일까, 인공물일까?

작품 속에 포장지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간편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속한 소비사회는 생존을 조건으로 개인에게 소비를 강요한다.
포장지는 소비사회의 대표적 이미지이자 구성원으로부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선전의 한 종류이다.
소비사회에 방법론 아래에서 우리는 생존하며 사회가 원하는 소비하는 인간으로 자라난다.
나에겐 그 모습이 분재처럼 보였다.

분재는 인간의 미감을 위해 나무를 소모품으로 전락시켜 정해진 모양대로 키운 것이다.
성장하는 생물인 자연물이 통제되고 억압되어 인공물이 된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감상하기 원한다.
하지만 만들어진 자연은 자연적이지 않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자연의 모사품일 뿐이다.
우리가 칭하는 자유 역시 자유의 모사품일 뿐이며 자유가 아니지 않을까?

포장지와 포장용기에서 자라나는 분재는 소비사회 속 개인의 초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에 대한 나의 물음의 시각적 표현이다.